나의 이야기

shanghai 방 문 기

baeky974 2011. 1. 7. 15:50

 

 

상하이 방문기

 

 

2010년 12월27일(월)

 

 

다사다난했던 경인년!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 경인년!

2010년 너무나 무거운 보따리를 마음에 간직하고 상하이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제 항구도시 상하이(上海)바다라는 의미다.

2010년 무거운 보따리를 상하이 바다에 띄어 보내고, 2011년 희망찬 신묘년을 맞이하고픈 마음을 간직하고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2시간 만에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대기 중인 승용차편으로 상해시내 미림각대주점에 여장을 풀고 곧장 상해고찰 용화사참배에 나섰다.

 

사찰이 가까워지자 첫눈에 7층탑이보이고 주변은 상점과 공원 그리고 기념품가게 등으로 정리가 되어있었다.

 

높이 40.65미터인 이 탑은 모두 8면 7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벽돌과 나무겹처마지붕으로 되어 있어 한편 고아한 자태를 뽐내면서도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이 탑은 247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현재의 탑은 북송 때인 977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고탑이다.

 

보통은 경내에 위치해 있어야할 탑이 경밖에 위치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절을 찾는 이들은 탑을 향한 경배로부터 경건한 마음가짐이 든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안내문을 보니 용화사는 상하이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절 중에 하나다.

전설에 의하면 삼국시대 오나라의 손권이 어머니를 위해서 건축했다고 한다.

용화탑은 용화사 건축 5년후에 만들어 졌는데 당대에 소실되었다가 송대에 재건을 하였고, 지금의 용화사는 청대에 중창한 것이다.

 

절 안에 경전, 불상 등이 있는데, 선종양식이다.

또 이곳에 높이 2m, 무게 6500kg의 종이 있는데 맑은 소리가 널리 퍼지는 이종은 일찍이 상하이팔경의 하나로 불리어졌고, 신년맞이 타종해사는 많은 국내외여행객을 끌고 있으며, 상하이시 여행절 경축행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날도 신년(춘절)행사를 위해 방송국에서 무대설치를 하고 있었다.

 

사찰의 입구에서부터 좌우에 석사자두마리가 배치되어있는 것이 대체로 특징이다.

전각의 배치는 미륵전, 천왕전, 우측엔 개당(開堂), 그리고 좌측에 500나한이 모셔진 나한당이 위치해있다. 대웅보전(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삼성보전(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방장실, 장경루등 일직선상으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 안에는 금색무늬로 장식한 4,000개의 아치모양 조각이 천장에 달려있고 나선형 도안이 박혀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 아래 중앙에 석가모니불, 우측에 관음보살, 좌측에 보현보살이 있고 대웅전 삼면 벽에는 18나한이 입석으로 진열되어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법당 정문 우측에는 범종이 좌측에는 법고가 있다.

천수천안관음보살 모신 전각을 자항보도(慈航普渡),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은 대원지장왕(大願地藏王)으로 그리고 우리나라의 팔상전과 같은 양식으로 모신전각과 특히 삼성보전내부의 벽면에는 나한, 일직사자(日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와 중국의 관우 장비같은 모습의 금인들이 모두 입상으로 배치해 놓고 금인(金人)들 앞에는 한해의 각자 소원을 기원하는 문구와 성명을 빨간 리본에 기록한 꼬리를 달아놓았다.

특히 대웅보전 앞에는 대형철제향로를 배치해놓고 방문객들이 향뭉치에 불을 붙여 기도하고 향로에 꽂아두는 의식과 전각안 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바닥에 절을 하는 것이 아니고 무릅만 대고 예불을 할 수 있도록 무릎방석 을 일렬로 배치해놓고 있다.

용화사는 섣달 그믐날 봄을 맞이하여 종치기와 용화묘회(廟會)가 유명하다고 한다.

지금은 매년 섣달 그믐날 108번 타종으로 불기를 전한다고 한다.

용화묘회는 미륵보살의 화신인 포대화상이 3월 3일에 입적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하며, 특히 이 행사는 오늘날까지 그 원형을 간직하고 있고 이때가 경내에 꽃향기가 가득하여 전국각지의 여행객과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12월28일(화)

오전9시 호텔입구서 승용차를 타고 상하이 3대 사찰의 하나인 정안사로 향했다.

정안사로 가는 길은 도시가 잘 정비된 다운타운에 위치해있었다.

사찰의 지붕은 거대한 황금용두마리가 마주보고 있고 뒤쪽은 황금으로 된 황금 탑이 우뚝 솟아 있어서 먼 곳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사찰입구 우측에는 거대한 네 마리 황금사자상 기둥이 세워져 있고, 중앙좌우로 석등과 해태상이 세워져 당당한 위상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건물벽에는 한자로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쓴 글자를 금물로 입혀 새겨져있다.

뿐만 아니라 대형백화점과 삘딩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의 광고가 사찰건물과비대칭을 이루고 있는 광경이 보는 사람으로 묘한 느낌을 준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경내로 들어가니 용화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천왕전 정중앙에 삼층탑모양의 대형 철제향로가 설치 되어있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던진 동전이 탑신에 들어가면 그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철제 탑 향로 는 네 개의 다리가 사자모습으로 조성되어있고, 하단은 돌에 쌍용이 조각되어 향로다리에 감추어져있었다.

대웅보전으로 올라가는 계단난간은 옥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전체건물의 회랑이 옥으로 건축되어있었다.

지금도 대웅보전뒤편으로 중국풍의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지고 있고, 대웅보전 안에는 개금하지 않은 거대한 은 불상이 모셔져있다.

이 건축물은 아파트 4~5층 높이로 보인다.

우리나라사찰처럼 건물내부와 외부에 단청을 하지 않았다.

중국의 고건축물이 그렇듯이 황금색으로만 칠해져있었다.

그리고 다른 전각에 모신본존불앞에 불상은 붉은색과 노랑색의 천으로 감싸고 있다는 것과 18나한상은 좌상으로 금박으로 개금해서 조성되어있다.

그리고 포대화상도 금박으로 개금한 좌상으로 모셔져서있다.

중국 사람들의 신앙관에는 미륵불의 화신으로 생각하는 포대화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회랑을 둘러보던 중에 마침 종교의식장면을 볼 수 있어서 발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천도제를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의식을 본존 불상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옆쪽에 모셔진 작은 불상 앞 탁상에 스님들이 둘러서서 의식을 하는 점이특이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지장보살이 모셔진 명부전에서가 아닌 석가모니가 모셔진 전각이여서 대단히 궁금한 점이 많았다.

경내 적오비(赤烏碑)의 기록에 정안사(靜安寺)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동오(東吳) 손권(孫權) 때 서역의 강승회(康僧會)에의해서 세웠다니 180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 온 것이 대략 후한(後漢) 때니 불교 전래 초기에 세운 절이다. 

원래 이름이 중현사(重玄寺)였으나 송나라 때 정안사(靜安寺)로 바꾸면서 지금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청(淸)나라 말기 광서제(光緖帝 1871-1908) 때 중건하였으나 1960 년대 문화대혁명 때 불타 버렸다. 이에 2000 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2007년 그러니 최근 완공한 모양이다.

현재는 모든 건물의 외형은 갖춘 채로 하나하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입구 우측의 관음불이 모셔진 사당은 내부는 아무런 장식 없이 시멘트 골조 그 자체지만 대형 향장목 관음보살상의 유려한 자태에서 풍기는 온화함과 신비스런 분위기 때문에 불자들이 드리는 예불은 너무도 성스럽기만 하다. 비록 뒷면에 후광은 없을지라도 기울어진 감로수병에서는 생명의 감로수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대웅보전은 공간의 크기만으로는 어마어마하다.

참배를 마치고 회랑을 둘러보면서 동종앞에 복전함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사찰들은 종각 앞에 복전함을 놓고 종치는 회수에 따라 돈을 보시하는 관행이 있는 것 같다.

정문 중앙의 천왕전 지붕에는 “風調雨順”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부처님의 능력일까, 아니면 속세를 위한 부처님의 마음일까, 글귀를 옮긴이의 마음이 궁금하다.

원래 정안사에는 ‘샤쯔탄’과 ‘융취엔’이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안의 새우 맛이 일품으로 알려져 왔다.

샘에서 밤낮으로 샘이 끓어 올라와 마치 온천 같기도 해 이 샘을 하이취엔[海泉]이라고 부르고 천하의 여섯 번째 샘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공사 중으로 없어졌지만 다시 드러날 새 사찰에서도 그 이름을 되살릴 연못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친김에 정안사를 뒤로하고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옥불사로 향했다.

승용차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다.

옥불사는 말 그대로 옥불을 모신 사찰이다.

많은 부처님을 접해 봤지만 옥불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옥불사를 찾는 많은 불자 대중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옥불사에 대한 애정을 더욱 깊게 한다.   옥불사는 청나라 1882년에 창건된 선종의 사찰로, 옥불이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원 건물들이 대부분 송나라의 궁궐양식을 모방하여 지은 것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장엄하며 대부분의 불당과 부속 건축물은 1911년과 1918년에 깔끔하게 개축되었다.

청나라 광서황제 때인 1882년, 보타산의 승려 혜근은 미얀마에서 다섯 존의 옥불을 가지고, 보타산으로 되돌아가던 중 상해를 지나는 길에 옥불사를 짓고 두 존상(옥불루에는 옥불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높이 1.95m, 무게는 약 1톤이며 백옥으로 조각되었는데 빛깔과 광택이 영롱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옥불당에는 옥조각 석가모니상이 모셔져 있는데 신장이 0.96m이며 외양이 자연스럽고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와불당에는 1882년 당시 절강성 보타산의 승려 혜근(慧根)이 미얀마에서 가져왔다는 다섯개의 옥불(五尊玉佛) 중 백옥으로 조각된 석가모니 좌상과 와상이 모셔져 있다.) 을 모셨다.

나머지 세존의 옥불은 상해 근교이 보타사에 안치되었으나 문화혁명 때 모두 파괴되었다. 당시 옥불사에 있던 두 존상은 문화혁명의 와중에 파괴될 위기에 처했으나 주지스님의 지혜 덕분에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주지스님이 사원 건물과 옥불상에 온통 모택동의 사진으로 도배해 놓아 군인들이 감히 그 사진에 손을 대지 못하여 옥불상을 파괴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경내의 옥불루와 와불당에 각각 보존되어 있는 옥불상 두기는 백옥 특유의 반들반들한 피부와 선명한 입술, 눈매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만큼 신비롭다.정문을 통과하면 정문 쪽에 접한 천왕전과 마주보이는 대웅보전이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 자리 잡고 있다.

두 공간의 간격이 그리 넓지 않다 보니 용화사보다는 훨씬 적은 불자들의 움직임이 오히려 부산스럽다. 향내와 향연, 절을 하는 모습과 곳곳에서 설법하는 법사들, 찬불가까지 곁들여 마냥 소란스러운데 불심 가득한 불자들의 표정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옥불사의 입장료에 포함돼 무료로 주는 소향은 검은 향으로 가는 향 3개짜리 한 묶음이다. 천왕전에는 4대 천왕이 양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중앙에 위타(韋陀, 동진보살)가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동쪽에 약사왕불, 서쪽에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 뒤에는 1층에 방장실이 있고 2층에 그 유명한 옥불루가 있다.

옥불루는 우측입구에서 다시 5원짜리 입장권을 끊어야 오를 수 있는데 2층 중앙에 옥불좌상이 자리잡고 있다.

옥불좌상은 높이가 1.92미터에 무게는 1톤이나 된다.

밝고 아름다운 백옥을 정교하게 쪼아서 만든 이 불상은 불신에 금박을 입히고 보석을 상감하여 광채가 난다.

바로 이 조탁기술과 아름다움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옥불사를 찾고 감탄을 금하지 못하는 것이다.

관람객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옥불좌상이 사방 유리벽면안에 모셔져 있고 그 중간에 놓인 향로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불자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진지하기만 하다.옥불루를 내려오면 좌측 통로 옆에 와불당이 자리 잡고 있다.

옥와불은 그 자태가 편안하고 온화하기 그지없는데 석가모니가 바로 이런 자세로 입적을 하였기 때문에 이를 원적상(圓寂像)이라 한다.

와불당 마당에는 대형 범종과 사람모양의 장수목이 전시되어 있고 맞은편엔 법기판매장이 있는데 출입하는 불자들은 판매장안의 소형 옥와불에도 예를 갖추는 모습이다.

현재 옥불사 동쪽에는 거대한 규모의 옥불성이 건립되고 있다. 이 옥불성이 완공되면 불자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옥불사 개장시간 : 08:00 ~ 17:00

입장료 : 5원(옥불루 입장료 별도 5원)

부적 : 12지신 목걸이-50원, 모자모양 접어 태우는 부적 1봉지-5원

식사 : 3~12원 사이(“옥불사소제”-옥불사 내의 식당, 도로에도 출입문 있음 : 국수 8.80원)

매 년 : 12월 31일 19:30~1월 1일 01:00입장료 : 100원 타종 : 108번 타종 - 588원108번 이하 - 100원

 

12월29일(수)

상해홍교 국제진주성으로 쇼핑을 나섰다. 1층 차집에 들러 여러 가지 다양한 차(茶) 맛을 시음하고 본격적인 쇼핑에 나섯다.

이곳은 차(茶보)다 진주가 더 유명한 백화점인 것 같다. 많은 외국인들이 흥정하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몇시간 동안 쇼핑을 마치고 나니 시장기가 밀려와서 상하이 평양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오랜만에 쇠고기 정골에 백두산 송이를 주문해서 하이트맥주를 곁들여 맛있게 식사를 했다.

소화도할 겸 상하이 명소인 예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예원은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 1559년, 반윤단(潘允端)이 개인 정원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1577년에 완공하였다.

근 20여 년간의 시간과 공을 들여 아버지 반은(潘恩)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는데, 공사기간이 길다 보니 정작 아버지는 채 완공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고 반윤단 또한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상해 시정부에서 1956-61년 사이에 보수하였고,1961년에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개방되었다. 1982년에는 국가 급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전통 중국 건물로 각가지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백화점등이고 특히 금방이 즐비하다.

이곳에 들르면 꼭 맛을 보아야 된다는 만두 줄을 서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맛을보고, 예원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중국정통요리식당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상하이최고 금융중심지이자 상하이 얼굴인 와이탄 야경을 보기 위해 동방명주부근 최고층 삘딩인 상하이 금융센터 101층 전망대에 올랐다.

한눈에 상하이 중심시가지와 황푸강, 동방명주, 푸동 국제공항 등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서 비로소 외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 안에서는 외국인과 내국인들이 삼삼오오모여서 야경촬영과 관람하느라 무아지경에 있는 것 같았다.

빌딩내부에는 일본어로 된 점포들이 많았다. 정안사 옆 구광백화점도 일본계백화점이란다. 이 삘딩도 일본인이 건립했다고 했다.

야경을 마치고 미림각 호텔로 와서 상하이 마직막 저녁을 호텔 내 식당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술잔을 기우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12월30일(목)

12시 20분발 푸동 발 인천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9시 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상하이방문이 3번째라서 그런지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이 첫 번째 방문 때는 중국의 고유문화가 숨 쉬는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은 국제도시가 되어 밀집된 아파트와 고층건물 그리고 화려한 네온 싸인 불빛은 소비와 환락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항구도시다.

이제 상하이는 중국문화 고유의 향수를 느낄 수는 없고 외국의 문화가 믹스된 속된말로 짬뽕 문화의 본산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하이 개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의 하나이며 중국의 주요 산업·상업의 중심지. 동중국해 연안에 있으며 북으로 양쯔 강[揚子江] 어귀와 남으로 항저우[杭州] 및 위판 만[玉盤灣]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면적에는 상하이 시뿐 아니라 주변의 교외지역과 내륙의 농업지역도 포함된다.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조밀한 도시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상하이는 중국의 항구 중 서방 무역을 최초로 개방한 항구로 오랫동안 중국의 상권을 독점해왔다.

1949년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는 거대한 산업도시로 발전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점차 늘어나는 중국의 국내 수요에 충당되고 있다. 교외 공업지구와 주택단지가 세워지고 토목공사도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공원과 그 밖의 오락시설이 마련됨에 따라 도시가 크게 변모했다.   인구 및 지리정보

상해 인구는 6,340㎢ 면적의 직할시만 아니라 유입된 300만 명의 인구도 포함하고 있어 다소 부정확하다. 아무튼 200㎢ 면적의 도심지만 해도 인구가 750만 명이 넘어 세계는 아니더라도 중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상해를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봄과 가을이다. 겨울은 영하로 떨어지고 가랑비가 자주 내린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며 40℃까지 올라갈 때도 있다.

• 인구 : 20,000,000명

• 면적 : 6,340㎢

• 시간 :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서머타임 기간에는 한국과 같다.

• 지역전화번호 : 021

• 전압 : 220V, AC 50 사이클이다. (2핀짜리 110V용 플러그와 220V용 플러그를 모두 가지고 다니면 편하다. 필요하면 변압기를 가져 가는 게 좋다)

  자연조건

성급(省級) 시이며, 북쪽과 서쪽은 장쑤 성[江蘇省], 남쪽은 저장 성[浙江省]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상하이 시를 비롯해서 바오산[寶山]· 자딩[嘉定]· 칭푸[淸浦]· 쑹장[松江]·진산[金山:주징(洙涇)이라고도 함]·상하이(신좡[辛莊]이라고도 함)·펑셴[奉賢:난차오(南橋)라고도 함]·난후이[南匯]·촨사[川沙] 등 육지에 있는 9개 현(縣)과 양쯔 강 어귀 및 동중국해 남동 해상에 있는 약 30여 개의 섬을 포함한다. 그중 가장 큰 섬인 충밍 섬[崇明島]은 10번째 현으로 면적이 700㎢이며, 양쯔 강 어귀에서 상류로 65km 이상 뻗어 있다.

이 도시의 육지 부분은 대부분 평균해발 3~5m의 평평한 삼각주 평원에 있다. 이곳은 상하이와 서쪽의 타이후 호[太湖] 지역을 연결하는 운하망과 수로망으로 빽빽이 얽혀 있다. 해안에 있기 때문에 계절적 차이가 뚜렷하지 않은 온화한 기후가 조성된다. 연평균기온은 14℃ 정도인데, 7월 최고평균기온은 27℃, 1월최저평균기온은 3℃ 정도이다. 

 

 와이탄 (外灘)

  외탄은 상해의 상징이자 상해 현대 역사의 축도이다. 전체 길이가 약 1.7㎞이며, 다양한 국가의 건축 양식이 모여 있어서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며, 한쪽으로는 넓은 제방을 따라 많은 관광객들이 황포강의 경관을 즐기기 위해 항상 붐비는 곳이다. 황포강 위를 운행하는 여객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기념이 될 것이다.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전체 제방을 비추어 유럽 도시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하고, 근처에 위치한 동방명주탑의 불빛이 외탄을 더욱 밝게 한다. 상해의 많은 연인들은 이곳에서 야간 데이트를 즐긴다. 외탄 중간부분에는 큰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중국 공산혁명의 원로인 진의(陳毅 : 천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국내외에 널리 알려지어 관광객들이 꼭 찾곤 하는 외탄은 고딕식.바로크식.로마식.고전식.문예부흥식.중서합벽식 등 풍격이 각이한 52동의 고층건물이 임립해 있어 마치 현대의 세계 건축박람회를 방불케 한다. 외탄은 상해 근대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새벽이면 시민들의 신체 단련 장소로 되고 저녁이면 현란하고 아름다운 야경은 온 와이탄을 야광주 마냥 눈부시게 한다.

 

난징루 (南京路)

  상하이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난징로는 동쪽 와이탄 부터 26개 도로를 가로질러 서쪽 징안쓰(靜安寺), 옌안시루(延安西路)와 만난다. 총 길이 5.5Km로 상하이 중심부를 관통하며 시장루(西藏路)를 기준으로 동, 서로 나뉜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은 도로 양쪽에 600여 상점들이 있고, 하루 평균 17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 거래되며 다년간 전국 소매상업 3대상점이 모두 이곳에 있다. 1999년 전면 도로 공사가 끝나면서 차량통행이 제한된 난징로 보행거리가 개통되었다. 이 곳은 상업거리뿐 아니라 손꼽히는 상하이의 관광명소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예원(豫園). 예원 상가(豫園商城)

  상해시 동남쪽에 위치한 중국 전통 정원으로, 명나라의 관료였던 반윤단(潘允端)이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1559년에 착공하여 18년만에 완공한 정원 건축물이다. 북경의 황궁정원 이화원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과거 황제만 쓸 수 있었던 용문양을 예원에 조각하면서 용발가락을 한개 더 만들어 역적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예원'이라는 이름은 '유열노친(愉悅老親)', 다시말해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원 안에는 40여 개의 정자와 누각이 있으며, 그 중 예원 입구에 있는 차관 '湖心停'은 가장 유명하여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위치 안런제(安人街) 218ㅣ입장료 대인/소인 25/10元ㅣ개장 매일 8:30a.m.-5: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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